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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예술인을 만나다 : 한국무용가 고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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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최고의 춤꾼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무용가로 접어들게 된 계기

할아버지와 함께 부모님께서 구 시장에서 조금 규모가 큰 사업을 하시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재롱을 많이 피우는 손녀딸인 저를 보시며 예능에 조금은 끼가 있어 보이셨는지, 5살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을 때 할머니 손에 이끌려 무용 학원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56년간 오로지 춤에만 전념하며 예술가의 삶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간혹 힘들어 포기를 하고 싶을 때도 있었으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춤만이 제 인생의 전부라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가장 애정이가는 작품

대학 졸업 후부터는 한국 전통춤만을 췄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7호인 호남산조춤이 가장 애정이 가는 춤입니다. 보유자께서는 익산에 도내 최초로 무용과가 설립되어 한국무용 교수님으로 재직하셨고, 익산시립무용단을 창단하시어 오랜 기간 동안 시립무용단을 안무장으로 활동하시면서 인생의 반평생을 이곳 익산의 무용 발전에 정열을 쏟으신 이길주 교수님입니다.

 

2013년 본인이 전주 권번의 이추월로부터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 15호 보유자이신 최선 선생님을 거쳐 이길주 교수님에 이어지는 계보를 가지고 계시면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7호 보유자로 지정이 되셨으며 제가 이수자 1호이면서 호남산조춤 보존회 회장을 맡고 있는 호남산조춤이 가장 애정이 갑니다또한, 창작 작품으로는 2019년도에 처음으로 시도하여 대구에서 펼쳐진 제28회 전국무용제에 전라북도 대표로 선발되어 선보인 그날이 오면 직녀에게라는 작품이 있습니다이 작품은 5.18 민주화 운동 시 문병란의 시 통일 염원을 꿈꾸며 만들어진 직녀에게 시집이 모티브가 되어 창작무용으로 재해석하여 연출된 작품입니다.

 

당시 대본을 맡으신 선생님께서는 도내 무용수들의 기량이 많이 떨어지니 무용수들을 광주의 모 대학교의 실력 있는 무용수들을 섭외해 작품을 하자고 하였으나 저는 그 계획에 반대하여 도내 무용과 1,2학년들을 무용수로 무대에 세웠습니다. 그 이유는 제 무용단이 전북 대표이고 잘하든 못하든 간에 도내 무용수를 출연진으로 삼아 열심히 훈련시켜 그들의 기량을 향상시키면 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어린 무용수들이 열심히 따라주어 굉장히 기뻤으며 당시 전국무용제 전국 도 대표 출전팀 중 출연진 남자 주연만 빼고 전북지역의 무용수와 최고로 어린 무용수들이 참가한 선발팀은 전라북도 선발팀인 저희 무용단 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예술가로 살아가고 싶고 기억되고 싶은지

대한민국 최고의 춤꾼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진정한 이 시대의 최고의 명무가 되고 싶지만 예술가로서는 특별한 의미를 담아두고 살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몸의 움직임 원리와 표현방법을 지금도 선생님을 모시고 배우고 공부하며, 삼라만상의 모든 만물을 이해하고 몸으로 표현하고자 연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후배들이나 후손들이 저의 춤을 가지고 모여서, 제 이름 뒤에 붙여준다면 기억에 남는 예술가가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무용가 고명구

1997-현재 고명구 무용학원 원장

2022-현재 호남춤연구회 상임이사

2003-현재 ()한국무용협회 익산시지부 지부장

2005-현재 ()전라북도학원연합회 무용분과 회장

2016~2019 ()호남산조춤보존회 회장

2016~2019 ()호남산조춤보존회 회장

2017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47호 호남산조춤 이수

  

문화정책팀 | 조회 648 | 2022-07-04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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