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예술인을 만나다 : 김영규 화백
익산 예술인을 만나다 : 김영규 화백
단순화 시켰을 때 희열을 느끼다
나에게 생활을 생략하는 것
그것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
“인간은 흔적을 남기려해요. 자의든 타의든 그래요. 그런데 일상의 흔적들은 안타깝게도 사라져버리죠”
김영규(77세) 화백의 “그림은 뭘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사라짐이나 망각은 신이 내린 가장 훌륭한 선물이죠. 만약 일상이 온전히 머릿속에 남아있게 된다면 그보다 불행한 건 없을 겁니다.”
‘망각은 좋은 것이다’는 또렷한 그의 말은 그러나 ‘그림’과 연결하려 하자 일순 엉클어진다. 눈을 돌려 그의 그림에서 흘러가는 것, 혹은 사라지거나 망각 되는 것을 찾으려 하는 헛된 시도 때문에 아득해진다.
“기억할 것만 기억하는 겁니다.” 그런 나를 간파했는지 그가 비틀거리는 내게 손을 내밀 듯 불쑥 던진 말이다.
“나는 학생들을 지도할 때 학생이 그림을 그리면 불필요한 것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문질러요. 생략하는 거죠. 극도로 생략되고 단순화 된 결과물, 그런 그림이 가장 훌륭한 거죠. 최대한 생략한 흔적이 나에겐 그림이에요. 없애버리는 작업이 나한테는 그림이 아닐까 싶어요.”
김영규 화백은 그렇게 자신이 왜 추상화에 천착하고 있는지를 진술했다. 그는 “사물을 통일시키고 뭉쳐서 단순화 시켰을 때 느끼는 희열 때문에 그림을 그린다”고 밝힌다.
버려진 것을 되살려내기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기
“도미에의 삼등열차처럼 그늘진 곳, 찌그러진 서민들을 대변하는 것, 부당한 정권에 대한 반항이 작가가 지향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 한면의 고통과 무력감을 보는 것이 작가의 시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삶의 고단함이 배어 나오는 그림 삼등열차를 떠올려 본다. 필요한 양식을 얻는 일 외에는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는, 그렇기에 우울한 침묵이 짙게 내리누른 삼등열차 내부는 오늘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예쁜 그림 장사, 먹고사는 수단이 그거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사회참여 예술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화가라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 밀착된, 현실 속에서 소재를 찾는 그의 예술지향은 단호해 보인다.
“폐기물의 가치를 나타내기, 또는 시장 한켠에 앉아있는 할아버지를 그리기, 그 주름진 얼굴이나 마른 몸에서 깊고 높은 사랑을 드러내기 등 삶에 대한 애증을 표현하는 것이 나의 방향성입니다. 껍데기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깊은 곳을 그려야지요. 고뇌와 고통 그 내면 말이에요.”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인간이 폐기하는 것들에 대한 그의 따뜻한 시선은 역설적으로 그런 시선을 잃지 않기 위한 공고하고도 냉엄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내 그림은 주로 폐품을 이용하는 작업에서 얻어진 결과물들이에요. 물감부터 공사장에서 쓰다 버린 싸구려 수성 페인트죠. 건물을 짓고 나면 남는 망치나 못을 가지고 작업을 하기도 하지요. 저희 집은 한마디로 쓰레기통이에요.”
그의 실천 예술이 지역이라는 협소한 지형에 갇혀 확장되지 못하고 공전(空轉)하고 있는 것 같아 문득 안타까워진다.
김영규 화백은 겹쳐 세워놓은 그림 몇 점을 꺼내서 세세하게 짚어 가며 작업 방법을 설명한다. “이게 골판지인데, 물을 살짝 뿌리면 겉이 떨어져요. 수평에 골이 있는 도화지가 되는 겁니다. 저는 붓을 쓰지 않고 주로 찌끄리고 문지르고 흘리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요. 붓으로 그린다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 말이에요.”
골은 눈으로 볼수 있고 만져봐도 느껴진다. 어떤 부분은 문질러서 의도적으로 골을 없애기도 했다.
“물감을 흘리면서 사각틀의 방향을 바꾸면 수 없이 많은 사각형들이 만들어지죠. 도저히 그릴 수 없는 도형과 선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얽히고 설킨 선들이 심상이나 복잡한 삶을 나타내는 거지요.”
그의 설명에 힘입었을까. 그림들은 수많은 선과 도형을 일체화 한다. 거기에 응축된 에너지는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기하학적 형태들은 다층적이고 복층적인 인간들의 삶과 심상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기호가 된다.
찌끄리고 문지르고 흘리는 그의 ‘춤’들이 그가 사용하는 오방색과 오버랩되는 화면들은 상징화 된 접신굿의 활동사진 같기도 하다.
부족하지만 지역에 기여하고파
그는 스스로를 성공하지 못한 화가라고 평가한다. “그림 그리는 소질을 있다고 생각하지만, 최고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교단에 있을때 창작의 길로 들어서야겠다 마음 먹었을때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그동안 연습한 것을 손재주로 그리는 것 말고는 소질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심사위원장을 역임한 정도면 스스로 대가(大家)의 자부심을 가질만한데도 그의 자신에 대한 평가는 가혹하다. “내로라 할 만한 작가는 확실하게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나만의 세계를 구축은 하겠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불평을 하면서 후회없는 삶은 살지만, 성공한 화가는 아니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실패한 사람이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김영규는 독립적으로 능동적으로 선행적 가치를 수행하는 아방가르드식의 역할을 수행하는 화단의 일원이다. 그러면서도 관객과 소통하고 가능하면 관객과 작가 사이의 벽을 허물고 싶어한다. 그렇게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사회에 돌려주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화가다.
그가 보다 광범위한 예술적 논쟁 속으로 들어가기를 바란다. 이 지역에 그를 품을 공간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글 공인배
김영규 화백 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원광대학교, 전주대학교 대학원 졸업
개인전 5회
단체전 451회 출품
국제전 22회 출품
국전 대한민국민술대전 전북도전 입선 특선 18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전북도전, 평화미술대전 등 심사위원
서울현대미술제, 남부현대미술제 운영위원
예술문화대상 및 공로상 수상
익산예술문화대상 창작상 2회 수상
현:한국미협 회원, ART회장, 익산예총회장, 전주대 평생교육원 교수
문화정책팀 | 조회 887 | 2021-04-02 09:37
첨부파일
IKSAN CULTURE & TOURISM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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